사색 / 김옥남

아득한 침묵폐부를 휘젓는 달빛밖으로 나오려는 말목울대 안으로 밀어 넣고 가슴앓이 한다절절한 눈빛무릎 꿀고 두 손 모은다말 잔등에 찍힌 화인처럼지울 수 없는 그리움깊은 밤, 사색은성근달빛 따라 긴 여행을 한다

2023-01-10 74 시항아리

성탄절 종소리 / 이문수

오늘은종소리가 크게 울리게 하소서깊은 아픔을 안고 떠나간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크게 울리게 하소서오늘은종소리가 멀리 가게 하소서먼 일터로 떠난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멀리 가게 하소서오늘은종소리가 더 맑은 소리로 울리게 하소서다른 종소리를 따라간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맑은 소리로 울리게 하소서오늘은종소리가 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오늘은옹소리가 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하소서별과 모래와 들풀 그리고 들새들도 모두들을 수 있도록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하소서

2022-12-20 81 시항아리

미역국 / 정두리

바다를 어미로 두고 온뻣뻣한 미역 가닥은바닷물이 아니어도 물기를 받으면길항없이 몸을 허문다순하고 부드럽기 이를 데 없다참기름에 덕어 보글보글 미역국 끓인다집 안 가득 미역 내음이 뜬다이것을 먹고 마시면청정지역의 숨길로맑게 걸러지는가,더께를 벗고 본래대로 되어지는가?자궁을 열어 어미가 되고가슴을 풀어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젊은 어미를 위해초로의 어미는 미역굴을 끓인다바다보다 깊어진 미역국 한 그릇행여 손가락이 빠질까 공손하게 받든다

2022-11-10 109 시항아리

그땐 몰랐습니다 / 전민정

고난의 눈물저 끄트머리에당신이 있음을 몰랐습니다짓밟고 가버린내 아픈 가슴 그 허술한 자리에보이지 않게당신이 있음을 몰랐습니다아픔이었던 숨결그 선혈의 피가꽃으로 피어날 때당신께서 보여주신 사랑죽어야 다시 사는 진리를나 이제야 알았습니다

2022-09-30 140 시항아리

대추 한 알 / 장석주

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 질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

2022-09-15 113 시항아리

자국 / 김태실

빗물이 돌확 가슴에 그리는 나이테고여 있는 시간마큼 짙고 엷게햇볕의 무게이 따라젖고 마르기를 반복한다솓아지는 소나기 받고불잎 아침이슬 몇 방울 보태가득 찼다마가렛 꽃 한 송이 그림으로 앉혀푸른 하늘들인 넓은 가슴엄지손톱만한 개구리 뛰어들어새처럼 난다물 주름이 돌 속을 파고든다햇살 손잡고 떠난 물의 혼한 줄 두 줄 새겨진 자국비어있어 더 선명한그대 사랑

2022-08-10 115 시항아리