뒷걸음치는 봄 / 김금용

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'봄날은 간다'를 부르는 남편손뼉까지 치며 선창해 보이는환갑지난 아들의 재롱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앞에서기억을 찾아 주려는 아들 앞에서봄날은 길을 잃었는지뒤뚱거린다

2024-04-09 117 시항아리

연가 / 서정란

그대 바람 되어 떠돌고나 그대 찾아 헤맬 때그래도 못 다한 인연이 남아어느 강기슭 갈대숲에서만나지거든 그땐 우리,다시는 잡은 손 놓지 말자나 백발이 된 그리움을 이고노래하는 갈대 일 때그대 연연한 바람으로 와서앙상한 내 어깨 어루만져 준다면그땐 나 외롭지 않겠네갈대 우는 밤이라도 슬프지 않겠네

2024-02-06 218 시항아리

갑자기 / 정두리

'갑자기는 없다'버스에 붙은 광고문구가다가온다그랬다지나고 보니갑자기는 없었다사람들이 갑자기라 믿고 싶었을 뿐그래야 덜 억울하고핑계 삼을 수 있기에조금씩 몸을 키워어느 날 싸울 듯이불빛 앞에 드러난 갑자기를우리는 그저'갑자기'란 이름으로맞을 수밖에

2024-01-01 120 시항아리

사색 / 김옥남

아득한 침묵폐부를 휘젓는 달빛밖으로 나오려는 말목울대 안으로 밀어 넣고 가슴앓이 한다절절한 눈빛무릎 꿀고 두 손 모은다말 잔등에 찍힌 화인처럼지울 수 없는 그리움깊은 밤, 사색은성근달빛 따라 긴 여행을 한다

2023-01-10 247 시항아리

성탄절 종소리 / 이문수

오늘은종소리가 크게 울리게 하소서깊은 아픔을 안고 떠나간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크게 울리게 하소서오늘은종소리가 멀리 가게 하소서먼 일터로 떠난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멀리 가게 하소서오늘은종소리가 더 맑은 소리로 울리게 하소서다른 종소리를 따라간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맑은 소리로 울리게 하소서오늘은종소리가 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들을 수 있도록오래도록 울리게 하소서오늘은옹소리가 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하소서별과 모래와 들풀 그리고 들새들도 모두들을 수 있도록천 개의 언어로 울리게 하소서

2022-12-20 175 시항아리

미역국 / 정두리

바다를 어미로 두고 온뻣뻣한 미역 가닥은바닷물이 아니어도 물기를 받으면길항없이 몸을 허문다순하고 부드럽기 이를 데 없다참기름에 덕어 보글보글 미역국 끓인다집 안 가득 미역 내음이 뜬다이것을 먹고 마시면청정지역의 숨길로맑게 걸러지는가,더께를 벗고 본래대로 되어지는가?자궁을 열어 어미가 되고가슴을 풀어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젊은 어미를 위해초로의 어미는 미역굴을 끓인다바다보다 깊어진 미역국 한 그릇행여 손가락이 빠질까 공손하게 받든다

2022-11-10 157 시항아리